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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디지털 혁신이 바꾸는 암 치료의 미래: 무엇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가

  • 2025-06-25
  • 김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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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디지털 혁신이 바꾸는 암 치료의 미래: 무엇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가

작성자: 국립암센터 김준태

의료 분야에 디지털 혁신의 물결이 빠르게 밀려오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은 암 치료의 패러다임 자체를 뒤흔들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명확한 초점과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디지털 혁신의 시대, 암 치료의 미래는 어떤 요소에 주목해야 할까?


데이터 생산, 이제는 공동의 책임

전통적으로 의료 데이터는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임상 현장에서 생산되어 왔으며, 임상의는 자신의 경험과 통계적 분석을 바탕으로 어떤 데이터가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지에 대한 직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의료 연구의 환경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1만 건이 넘는 AI 관련 논문이 발표되는 상황에서, 모든 연구를 임상의가 일일이 검토하고, 그중 AI 기반 분석에 적합한 데이터를 선별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반대로 AI 개발자들은 모델의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변수와 알고리즘을 실험하고 조합하는 데 능숙하다. 하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변수나 데이터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혹은 그 해석이 환자의 치료와 어떤 연관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처럼 기술 개발과 임상 적용 사이의 간극은 연구의 방향성과 실제 효용성 간의 괴리를 낳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생산 방식부터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병원이 데이터를 제공하고 연구자가 이를 활용하는 일방향 구조를 넘어서, 의료진과 AI 개발자가 데이터 수집을 함께 기획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의료진의 임상적 통찰과 연구자의 기술적 전문성이 조화롭게 결합될 때 비로소 고품질 데이터가 생산되고, 이는 더욱 의미 있는 연구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암 치료 프로세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선행돼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암 치료의 혁신은 기술 자체의 성능 향상만으로는 이뤄지기 어렵다. 무엇보다 암 치료 과정에 대한 구조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어디에 AI기술이 개입해야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을지를 파악해야 한다.

과거 정보통신기술(ICT)이 산업계에 가져온 변화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80~90년대, 기업들은 단순히 컴퓨터나 인터넷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관리·고객 응대 등 전반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분석하고 재설계했다. 이 과정에서 기술은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서, 업무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오늘날 AI 기술이 의료 분야에 가져올 변화는 그 당시보다 더 파격적일 수 있다. 암 치료는 진단, 치료 계획 수립, 약물 처방, 모니터링, 예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다단계적인 과정을 거친다. 이 전 과정을 대상으로 기술 적용의 시점과 방식을 정밀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혁신은 단편적이거나 일시적인 개선에 그칠 수 있다.

또한, 사회적·윤리적 고려가 필요한 지점도 반드시 식별해야 한다. 환자의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영역이나 치료 결정에 AI가 직접 개입하는 부분에서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동시에 환자의 삶의 질 향상과 의료진의 부담 경감 등 ‘의료 생태계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전략적 기술 적용이 필요하다.


기술의 도입은 자연스럽게, 평가는 체계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의료 현장에 전면적으로 도입되는 과정은 급격한 도약이나 극적인 전환보다는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확산의 형태를 띨 가능성이 크다. 영상 판독이나 진단 보조 도구처럼 특정 분야에서 시작된 AI 기술은 점차 다른 진료 영역으로 확장되며, 의료진의 일상적인 업무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이처럼 기술 도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그 실제 효과와 파급력을 평가하는 방식도 장기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기술이 완전히 의료 시스템에 정착한 이후에야 성과를 검토하는 방식은 시의성을 놓치기 쉽고, 혁신의 방향성을 조기에 설정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부터 기술의 영향력을 면밀히 추적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단순한 정확도나 민감도 같은 성능 지표를 넘어서, 장기적인 임상 성과, 의료진의 업무 변화, 환자의 치료 경험, 의료 자원의 효율적 활용 등 다양한 관점에서의 종합적 평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AI 기술이 실제로 진단의 일관성과 품질을 얼마나 향상시켰는지, 의료진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환자의 신뢰도와 만족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체계적인 평가는 단순한 사후 성과 측정을 넘어, 기술 확산의 방향성과 속도를 조율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은 부분적인 성공이나 실패처럼 보이는 기술도 축적된 데이터와 경험을 통해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대로 단기 성과만을 기준으로 평가해 유망한 기술이 조기에 도태되는 일도 방지할 수 있다.


SCI(E) 논문 중심의 평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의료 인공지능 분야는 그 어느 분야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연구 성과가 SCI(E)급 논문 출판이라는 전통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현실의 변화 속도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공지능 기술은 연구에서 실현까지의 시간이 매우 짧고, 기술 발전 속도는 논문 작성·심사·출판의 주기를 훨씬 앞선다. 이 때문에 연구 결과가 실제 의료 현장에 적용되기도 전에 이미 시대에 뒤처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보다 신속하고 실용적인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 최신 기술과 아이디어를 빠르게 공유하고 검증할 수 있는 전문 학회나 실증 중심의 컨퍼런스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플랫폼은 학문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기술의 구현력과 현장 적용 가능성을 동시에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작동 가능한 프로토타입의 개발은 이제 단순한 참고 사항이 아니라 핵심 평가 요소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완성도 높은 알고리즘이라 하더라도 실제 임상 워크플로우에 통합되지 않는다면 그 가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인터페이스 설계, 사용자 피드백, 응답 시간 등의 요소가 최적화된 프로토타입은 기술의 ‘실질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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